title : Miles Christi (그리스도의 군사) 제18호(2019.4.-6.) - III
name : silviadate : 2020-01-02 18:23:50hits : 190
 - 혼인의 목적인 자녀는 혼인의 새로운 왜곡된 관점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대의 혼인은 자녀를 위한 게 아니라, 성과 감정적, 정서적 사랑을 위한 것이다. 왜곡과 전도((轉倒), 오늘날 책임감 있는 부모가 된다는 건 기껏해야 극소수의 자녀를 갖는 것이라는, 그런 것이다. 그리고 옛날 방식은 틀렸고 사라졌다고 여겨진다. 3단계로..

1) 부친의 권위와 자녀에게 가까운 모친의 자리가 특히 사라졌다. 따라서 자녀는 페미니즘의 직접 희생자이다. 여자들이 자녀보다는 다른 일에 더 몰두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들은 뼈대, 중추, 존경받는 남편이 정하는 방침도 부족하다. 불쌍한 청소년은 의지와 감정이 무너지기 쉽고, 지침이 없이, 인생에 대한 준비가 불충분해지고 시대의 모든 덫에 취약해진다.

2) 이혼이 자주 일어나 자녀에게 더 심한 폐허를 늘려 주어, 그곳은 전장이 되는 한편, 재혼은 한층 더 가족의 중요한 소세포를 파괴하기를 계속한다.

3) 다음으로 대지는 사탄이 혼인 본래의 위업의 흔적을 완전히 말살하려는 시도로 모든 유형의 동성애 결합을 도입할 준비가 돼 있다. 성욕충족 로봇, 시험관 아기, 대리모, 끔찍한 조작과 상품화가 묵인할 수 있게 되고 프로메테우스식 가족파괴의 이 세 번째 단계에서 법률의 보호를 받게까지 되었다. 지금 많은 민족이 사라지고 있다.

 

I.

- 1)에 관하여, 사탄은 여러 방식으로 여성의 마음에 교만을 심고 결혼하기 전에도 남성을 불리한 입장에 두기 위해 극도로 열심이다. 포르노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탄과 사랑을 파괴하고 다음에는 결국 모욕감을 준다. 이것은 페미니즘과 결합하여, 남성이 구혼 활동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남성이 여성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조차 욕을 먹는다. 남성은 아름다움, 친절, 통찰력과 협동성과 같은 여성 특유의 것에 대해 여성을 칭찬해서도 안 된다. 대신에 여성은 남성에게서 가장 빛나는 속성으로 존경받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의 친절한 행위와 구혼의 갑작스러운 소멸은 결혼을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결혼할 가능성이 있다 해도 결혼을 잘못된 출발점으로 설정한다.

그와 달리, 혼인에서 여성은 이 지면에 담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 남편의 가부장권을 사랑하고 받쳐 줘야 한다. 여성의 겸손은 남편의 머뭇거림과 약점을 극복하고 자녀의 영혼에 보배이며, 날마다 겸손과 순종이라는 기본 덕목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어서, 이런 필수 덕목을 차곡차곡 습득할 좋은 기회가 된다고만 말해 두자. 기타 등등.

- 성에 대한 공의회식 관념은 지극히 왜곡돼 있으며 공식 교회에서 무수히 계속 성행하는 성폭행의 원인이다. 성의 가치는 그 자체로(per se)’가 아니라 다른 것을 통한(per aliud)’ 것이며, 음식을 먹을 때의 미각과 같다. , 작용을 촉진한다. 천주는 자녀를 갖는 문제를 부모에게 장려하고 보상하기 위해서 그것을 설계하셨다. 또 이 충동을 강력하게 만드셨다. 왜냐하면 그 목적, ()의 영속화가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이티야(Wojtyla, 요한 바오로 2)육체의 신학과 다른 온갖 공의회식 윤리신학은 자연의 질서를 부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술 더 떠 원죄 그리고 성에 대한 원죄의 결과를 부인한다. 원죄는 네 가지 상처의 원인이다. 그중 하나는 색욕으로, 바로 이성이 없는 동물처럼 성 자체를 위해 성을 탐닉하는 것이라고 대천신 라파엘은 토비트서에서 말한다. 다윗은 말하기를, 자기 모친이 자신을 죄 중에 잉태했다고 한다. 성은 이제 그 행위가 이성의 사용을 (일시적으로) 없애고 거대한 육신의 시련및 마음의 나누임에 결부돼 있다는 사실에서 원죄 전달의 인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성 바오로, 코전 7) 그래서 그리스도와 종도들과 함께 교회는 항상 동정성을 혼인의 결합보다 훨씬 더 고결하다고 주장해 왔다...그리고 그 점에서 만장일치가 압도적이다.

동정성은 천주의 영과 우리의 영이 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성 바오로는 코린토서에서 다시 말한다. 하지만 신비적 결합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피조물은 애가서 전체가 증언하듯이, 혼인이다. 그러나 거기서 다시 공의회는 교회 교부들의 해석을 크게 거슬러, 완전히 역행하고 바꾸거나 적어도 육체의 결합과 신비적 결합을 혼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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