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Miles Christi (그리스도의 군사) 제18호(2019.4.-6.) - II
name : silviadate : 2020-01-02 18:22:52hits : 85
 - 프란치스코는 2차 바티칸으로부터 인간 중심성과 혼인의 목적 전환(<Gaudium et spes(기쁨과 희망)>)을 채택하지만, 그것을 시종일관 철저하게 적용한다. 2차 바티칸이 교묘하게 공격한(역시 <Gaudium et spes>에서) 교부의 권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 위의 내용을 고려할 때, 프란치스코가 애초에 이단에 기여한 것은 무엇일까? 상황, 점진성, 조건, 복잡성 및 규정에 대한 그의 도덕성은 그가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회원이 고안한 것이다. 그런데 요한 바오로 2세는 지금은 많이 잊힌 문서인 <Veritatis splendor(진리의 광채)>에서 그 예수회원에 반박하는 것처럼 보였다.

에사오처럼 그는 불평하여 거짓말의 아비에게 적어도 나를 위한 또 다른 이단이 있을까?”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에게 마귀는 동정성을 공격하라,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동정성을 폄하하고 동성애를 조장하라,”고 답했다. 그렇지만 그 점에서 그의 교황 임기에 많은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한편, <Amoris Laetitia>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프란치스코는 코린토전서 7장을 보면 동정성이라고 해서 혼인보다 우월하지 않고, 절욕(節慾)이라고 특별히 완벽하지는 않다고 말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동성애에 관하여 별로 말하지 않고, “동성의 결합은 존경할 만한 사목 지침을 제공받아야 한다,”고만 말한다. 그는 그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성당과 그 밖의 곳에서 많은 동성애 결혼이 거행된다는 것과 바티칸이 이 행성에서 동성애자들의 최고 집결지임을 알아야 한다(Cf. 이 화두에 관한 최근 도서<Sodoma>). 아니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밝힐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 프란치스코에게 정말로 새로운 것은 용어의 선택이다. “사람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면 안 된다.” “남자다움이니 여자다움이니 하는 고정관념의 범주는 없다.” “결혼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은 대인관계 언어이다.”... 그리고 그는 전통주의자들에 대한 애정이 거의 없다. 그들은 위선자에,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고, 신봉자에다가 구식 모델이고, 동정심, 기타 등등이 없다고 한다.

- 오류를 수행함에서도 마귀가 발견된다. 다른 종교인 간의 혼인은 위대하고, 이혼자도 재혼자도 영성체를 할 수 있으며, 혼인 무효 선언은 5센트의 비용만 들이면 되고, 다음 결혼을 준비한다...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생각하라.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어떻게 반박할까? 모든 게 뒤집혔으니, 전체 문안(文案)을 거꾸로 뒤집어서 교황이 말하는 것과는 반대로 말해야겠다.

- 다음으로 교황 코스치란프(역자: 프란치스코 철자를 거꾸로 배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입 천주는 창의력의 놀라운 관여와 구속사업의 예표로써 혼인을 세우셨다. 혼인은 남자와 여자의 계약을 통한 돌이킬 수 없는 결합에 있으며, 천주는 그것을 성사의 존엄성으로까지 더 끌어올리셨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속하지 않아서 혼인의 본질과 목적을 변경하지 못한다. 또 혼인의 본질과 목적은 우선 자녀 출산과 양육으로써 천주를 섬기고 천주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며, 다음으로 그리스도인인 배우자 간 서로의 행복이다.

이로써 결혼은 매우 도덕적인 행위, -결혼의 대상(불가해소성을 지닌 결합), -결혼의 목적(자녀 출산 및 교육), - 그리고 결혼의 환경(혼인에서 매우 많은)을 통해 선하게 이루어지는 인간의 행위가 된다.

성총의 도우심으로 인간은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선한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로써 죄를 피하고 덕을 행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 가지 구성 요소 중 어떤 것이건 악하고 왜곡된 것으로 밝혀지면, 특히 대상이 본질과 그 법률에서 벗어난다면, 행위는 그 자체로 악한 것이 되거나 죄가 된다. 이 객관적인 자연의 법률은 사물이 그 자체에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내포하고 있는 조화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타고난 이성으로 말미암아 알려져 있다.(Cf. 2,15)

인간의 의지는 인간의 마음과 외부의 진리, 선 및 사물의 아름다움 모두에서 파괴적 결과가 없는 상태에서는 그것을 왜곡할 힘이 없다.

반면에 모든 대상과 우리의 마음에서 천주의 지혜를 감동시키는 것은 천주의 도덕관이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사물의 조화에 의도적으로 동의해야 한다. 반면에 사물은 그렇게 할 수 없고, 다만 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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