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9 12.1. 장림수주일, 샤잘 신부님 미사 강론
name : silviadate : 2019-12-06 08:41:07hits : 51
 장림수주일
2019121

장림수주일에 모든 것의 끝을 회고하는 것은 우리의 관례입니다. 그렇지만 상황이 매우 암담해진다고 해서, “끝장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겠습니다. 천주께서 그렇게 결정을 내리실 때까지는요. 종도들이 우리 주님께 구해 주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라고 아뢰었을 때 우리 주님은 종도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유딧도 천주를 시험하여 다 끝났다고 말하는 그대는 누구뇨?”라고 꾸짖었고, 다윗도 만군의 주를 모독하는 그(골리앗)는 누구인가?”라고 했습니다.

천주는 우리를 무()에서 창조하셨고 천주 홀로 모든 존재의 무리 밖에서 스스로 존재하십니다. 왜냐하면 천주께서 존재하시는 방식은 혼자 힘으로 존재하시는 반면 우리는 늘 천주로 말미암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자연신론자들은 잘못 알고 있습니다. 천주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다음에 당신이 만드신 아름다운 시계가 알아서 작동하도록 놔두고 가버리셨다고 하니 말입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주는 당신을 저버리는 자들을 떠나시지만, 여전히 존재 안에서 그들을 받쳐주시고 당신의 섭리로써 그들을 보존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시기를, 천주는 가장 작은 풀잎조차 얼마나 많이 돌보시는지 모르고 머리카락 한 올도 헤아려지지 않은 채로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섭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는 또 우리를 매 순간 존재케 하십니다. 성 토마스는 논하기를, 무엇인가를 무에서 존재케 하려면 무한한 힘이 요구된다고 합니다. 계란도 없이, 어디서인지도 모르게 불쑥 오믈렛을 만들어 보세요! 그래서 가장 작은 풀잎이 존재케 하는 것은 무한한 원인이신 천주이십니다.

성 토마스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 원인은 우리의 존재를 지속시키기 위해 계속 접촉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존재와 같은 결과는 존재성을 부여하는 행위를 여전히 계속하도록 무한한 원인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요. 여기 있는 전구의 다른 쪽 끝에는 거대한 한국 발전소가 있는 것과 좀 비슷합니다. 이 전구의 비유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어떤 비유도 맞는 부분도 있지만 틀린 부분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천주께서 우리에 대해 찰나보다도 더 짧게 생각하기를 멈추신다면, 우리는 소멸합니다. 이는 마치 이 성당의 스위치 6개를 끄면 전등이 꺼지는 것과 같습니다. 천주는 당신의 원수들을 파멸시키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셔야 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원수들은 즉시 모조리 골칫거리이기를 그만둘 것입니다! 하지만 천주는 절대로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천주께서 창조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후회 없이 조성됩니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유다의 영혼을 포함해서요. 천주는 당신의 원수들을 존재케 하시며 그들이 천주 및 천주의 교회와 한판 붙어 보게 하십니다. 아니, 그들의 악의가 진이 다 빠질 때까지 공격할 기회를 차고 넘치게 주십니다.

그러나 전구의 비유에서 맞지 않는 부분은 천주께서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우리의 존재를 지탱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물이 존재하기 시작하는 지점에 있기 위해서는 내부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주께서 우리를 얼마나 많이 보살피시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천주의 외적 섭리만을 생각하지만, 천주께서 내부로부터 존재성를 지탱하시고 유지하시지 않는 원자는 없습니다. “천주는 내가 나 자신에게 친밀한 것 이상으로 나에게 더 친밀하시다,”라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합니다. 천주는 창조하시고 나서는 머무시고, 그런 다음에는 지켜보십니다. 나는 특히 내 존재의 99.9%인 내 영혼 안에서, 천주 앞에 완전히 드러나 있고 발가벗겨져 있습니다.

말할 게 더 있습니다. 천주는 나뉘실 수 없습니다. 천주는 어디에 계시건, 정체로 온전히 계십니다. 팔은 탁자 위에 다리는 탁자 밑에 두는 우리와 다르십니다. 천주의 존재는 무소부재하시고 무시지시하신 것과 같이 총체적이십니다. 천주는 부서를 운영하는 사람처럼 당신의 피조물을 챙기시지 않습니다. 천주는 사물의 원격 조종자가 아니시며, 당신이 정하시는 천신과 인간 안에 계시어 사물을 운영하십니다. 여러분은 천주를 나눌 수 없습니다. 천주와 함께라면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 토마스는 천주께서 만물 안에 다음과 같이 계신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 존재로써 계십니다 -> 천주는 그곳에 계시며 그 어떤 것도 천주의 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 권능으로써 계십니다 -> 천주는 만사에 작용하시고 지시하십니다.
- 실체로써 계십니다 -> 천주는 당신의 실체의 지속적인 접촉에 따른 존재의 행위로 만물을 유지하십니다.

하지만 아직 더 높은 차원의 천주의 존재, 권능, 실체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주께서 성총이라는 작용으로써 우리의 영혼에 당신 자신을 직접 적용하시고 임하실 때입니다. 성총은 피조물에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성총은 피조물을 자연적 수준보다 무한히 위로 들어 올립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성과 의지는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천주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다른 피조물들은 다소 눈이 멀어 있는 반면 우리의 지성과 의지는 천주의 실체를 볼 수 있고 천주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특히 천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르페브르 대주교는 이러한 천주의 존재 양식, 천주의 무한한 권능과 존재 그리고 그 결과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현대인의 어리석음과 독립 요구. 다른 결과는 나쁜 상황을 만회할 수 있는 천주의 역량입니다. 천주는 일을 바로잡기 시작하기도 전에, 어쨌든 모든 것을 당신 손에 쥐고 계십니다. 교우 여러분, 지금은 장림절입니다. 우리는 당신 손에 모든 것을 쥐고 계시는 작은 아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샤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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