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7. 9. 3. 일요일, 피코 신부님 미사강론
name : silviadate : 2017-09-05 08:50:29hits : 532

성 비오 10
201793일 일요일

예수 그리스도 및 그리스도의 교회의 수호자

교황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요 교회의 수호자인 교황에게는 가톨릭 신앙과 교리를 온전하게 지키는 역할이 있습니다. 여기 현대의 교황들이 영감을 받아야 할 정의(定義)가 있습니다.

비오 10세는 교황좌에 오르자마자, 용감하게 일에 착수하여 프랑스공화국의 탄압에 저항하는 일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비오 10세는 교황으로 선출되고 1년 조금 더 지나서 프랑스의 부당한 정교분리법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정교분리법은 1905년에 프랑스 의회의 투표를 거쳤습니다. 즉시 이 법의 효과가 감지됐습니다.

- 건물, 전례용품, 학교, 병원, 기타 등등의 교회재산 탈취
- 수도회 해산 및 수사 혹은 수녀들이 수도생활을 포기하기를 거부하는 경우에 추방하라는 판결을 내림
- 병원, 학교, 고아원과 정신병원에 헌신하는 수녀들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

아직 얼마나 많은 시설이 프랑스, 그 수녀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그 수녀들은 장애인, 고아, 아이들 혹은 병자들을 돌보기 위해 부모, 친구, 재물, 명예 그리고 세상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다 버렸는데 말이죠.

1906년에 교황은 정교분리법을 장엄하게 단죄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저항하는 프랑스 주교들을 꿋꿋이 지원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국가에 대놓고 맞서야 하는 건가 하며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성 비오 10세는 배교 국가로부터 교회의 자유를 굳게 지키고자 교회의 재산을 희생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프리메이슨의 공화국과 타협함으로써 교회, 병원, 찬란한 학교를 소유하느니 차라리 가난하고 신앙에 충실하라는 것이었지요.

포르투갈 교회도 프랑스 교회보다 더 광포하고 야만스럽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비오 10세는 다시 프랑스를 위해서 했던 것처럼 행동했지요. , 1911년에 박해법을 단죄하고 가톨릭 신앙 안에 일치하고 항구할 것을 재차 촉구한 것입니다.

1910년에는 칙서{공개서한}를 발표했는데, 칙서에서 시대의 오류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영혼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비오 10세는 혁명적 개혁가들의 정체를 폭로함으로써 참된 국가개혁과 그릇된 국가개혁을 식별하는 특징을 지적했습니다. 혁명적 개혁가들의 숨은 목표는 가톨릭 인구의 영혼 안에 있는 신앙을 말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오 10세는 모든 신자들에게 착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하고, 성사에 자주 참례하며, 영혼구원을 위해 헌신하고 나라를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교회로 탈환할 정치 연합체를 결성하라고 간곡히 권고했습니다.

신앙의 원수를 갚아주는 자

당시에는 이미 새로운 이론들이 교회를 위협했습니다. 비오 9세와 레오 13세는 자유주의 가톨릭인들에 대항하여 무진장 싸워야 했습니다. 교황들은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교황은 지독하게 어두운 교회의 앞날을 미리 내다보고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짐의 간담이 서늘해짐은 그 어느 것보다도 현대 인류사회의 재앙에 가까운 상황 때문이라. 하긴 뉘라서 작금의 사회가, 나날이 무성해져 가장 내부의 존재까지도 파먹어 들어감은 물론 파멸로 끌고 가되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끔찍스럽고 뿌리 깊은 병폐로 인하여 고통을 겪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리요? 경애하는 형제들이여, 이 질병이란--천주를 배반하는 것임을 알지어다.

이 모두를 생각건대, 그토록 극심한 완악함이란 말하자면 일종의 전조, 어쩌면 마지막 날을 예비하는 악의 시초이니, 종도 말하셨음과 같이 세상에는 이미 멸망의 자식”(데살로니카후 2,3)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두려워하게 하는 확실한 근거로다.

실로 인간과 천주 사이의 모든 관계를 말살하고 뿌리째 뽑으려는 발칙한 노력으로써 종교를 탄압하고 신덕도리를 파괴하려고 분투하는 가운데 그렇듯 뻔뻔함과 천벌 받을 일이 도처에 만연해 있음이라!

다른 한편으로, 바로 그 종도에 따르면 이는 적그리스도의 구별되는 표시인즉, 무엄하게도 자기를 천주나 성물의 이름을 가진 모든 것 위에 자기를 높여 천주의 성전에 앉으며 또한 자기를 천주인 양 말하기까지 하니라. ...[인간이란] 본래 천주에 관한 지식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천주의 주권을 비난했으니, 말하자면 우주를 인간 자신을 경배하는 사원으로 삼았도다.

어떤 다른 이들은 가톨릭 교리를 현대의 상황에 더 적합한 새로운 가르침으로 대체함으로써 가톨릭 교리를 고쳐야겠다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을 경험함이라. 인간의 생각이 가톨릭 신덕도리에 맞춰지고 인간이 종교에 순응하는 게 아니라, 마치 가톨릭 신덕도리가 인간의 생각으로 바뀌고 종교가 인간에게 순응해야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천주가 인간을 섬겨야 하느뇨? 이처럼 생각하는 것은 인간을 신으로 삼는 것이요 천주가 인간의 노예가 되는 것이로다! 오늘날 이단은 현대주의자의 신조로 말미암아 널리 퍼뜨려짐일세라...”

현대주의자들이 교회 내부 어디든지 침투했기에, 성 비오 10세는 즉시, 성공할지 패배할지 앞뒤를 가리지 않고, 그들과 끝까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성 교황의 유일한 관심사는 교회의 교리를 온전하게 지킴으로써 가능한 한 많은 영혼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을 순수하게 보존하는 것을 겨냥하여, 교황은 190798일에 현대주의에 맞서서 칙서 <파셴디 도미니치 그레지스>를 발표했습니다. 그렇게 성인 교황은 현대주의자들의 거짓말을 탄핵하고 그 거짓말이 구원에 얼마나 방해가 되고 위험한지를 폭로했습니다. 교황은 말만 한 게 아니었습니다. 행동을 취했습니다. 이단에 물든 주교들은 직책에서 해임됐습니다. 위선적인 많은 신학교 교장들도 같은 운명에 처해졌습니다. 신앙이 있되 태만한 주교들은 심한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현대주의가 잦아들긴 했는데, 겨우 당분간이었습니다. 이는 교황 프란치스코로 인해 애석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로 분명하여 하는 말입니다.

교회법의 개혁가

성직자 혁신: 가톨릭 인구가 무지함으로 인해 신앙에서 떨어져나간 것을 보고 교황은 사제들을 다그쳐서 실제로 교리문답을 설교하고 가르칠 의무를 다하게 했습니다. 교황은 사제들이 연중 주일마다 트리덴티노 공의회의 교리문답문을 설명해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또 주교들의 과업을 챙겼는데, 주교들의 의무는 지식과 용기를 갖춘 거룩한 사제들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지식과 용기는 신자들을 참된 가톨릭 생활양식으로 인도하는 선한 싸움을 싸우는 데 필요한 것이죠.

전례 혁신: 모든 신자들에게 여러 번 매일 영성체를 하도록 일깨우기 위한 성 비오 10세의 갈망은 어디서든지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제들은 이 거룩한 관습을 퍼뜨리는 열성에서 서로 경쟁했고, 신자들은 열심히 응답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성체성사께 대한 신심의 광범위한 깨우침이었습니다. 첫 영성체가 함부로 미뤄지는 것을 보자, 교황은 교회의 고대 관습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아이의 명오가 열리는 나이, 일곱 살쯤에 이르자마자 영성체를 하는 것이지요. 이런 혁신을 한 보람이 있어 교회에는 어린이 성인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12살에 세상을 떠난 기(Guy)라고 하는 프랑스 소년, 역시 12살에 죽은 안느(Ann)라는 프랑스 소녀, 9살에 죽은 넬리(Nelly)라는 아일랜드 소녀가 그들입니다. 이들 세 어린이는 시성되었습니다.

또 음악과 전례의 남용으로 미사가 경시되었습니다. 세속의 극장 오페라가 그레고리안 성가에 우선하여, 그레고리안 성가는 많은 수도원에서조차 극도의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교황 비오 10세는 1903년에 이런 신성모독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성 교황은 특별히 전례의 성가를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복구하는 일을 맡는 위원회를 만들고, 로마에 상급 종교음악 학교를 세웠습니다.

다음에 성 교황은 이 개혁에 성무일도서와 미사경본의 개혁을 더했습니다. 새 성무일도서와 새 미사경본이 발행되었습니다. 잘 들으세요. 이 쇄신은 그냥 성무일도서와 미사경본을 훼손하는 이상한 요소를 제거하여 전례를 체계적으로 다듬는 것이었습니다. 새 미사경본을 고안하는 게 아닌 거죠...

혼배성사의 개혁과 방어: 프랑스에서는 가족이 프리메이슨의 공격을 받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혼, 간통을 변호하는 최초의 공론, 기타 등등이었죠. 온전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비오 10세는 혼배성사 거행에 관한 규칙을 수정했습니다.

교회법 개혁: 비오 10세는 1904년에 교회법을 성문화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교황은 의안을 입안할 추기경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새 조항은 비오 10세의 후계자인 베네딕토 15세가 재위할 때 발행됐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조항을 1983년에 새 교회법 조항으로 망가뜨렸습니다.

성인 교황의 서거

1914,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우리는 전쟁터의 소름끼치는 대량학살을 생각하면 비오 10세의 고통을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비오 10세는 특히 이 전쟁이 온 유럽에서 한때 지극히 가톨릭적이었던 모든 가톨릭 문화, 건축물, 조직을 끝장낼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망연자실했습니다.

기관지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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