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윌리암슨 주교님의 Eleison Comments 제629호
name : silviadate : 2019-08-05 15:46:34hits : 66
 저항세력의 일관성

201983

629

권위 없이는 진리가 살아남지 못한다.
진리 없이는 권위가 번창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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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는 자만심을 가라앉히는 소화기를 지향하여, 2012년 이후 가톨릭 원칙과 풍습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수고하는 사제와 평신도의 업적을 좀처럼 강조하려 들지 않지만, 특별히 새 성비오10세회, 즉 로마의 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는 그 성비오10세회의 범위 안에서만은 그렇지 않다. 새 성비오10세회(Newsociety) 지도자들은 물론 이른바 저항또는 충성운동을 단죄한다. 특히 다양한 저항 사제들 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가톨릭 저항의 대조적인 일치를 강조할 때가 왔다.

예를 들어, ‘저항국면을 오랫동안 지켜본 한 관찰자는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논평한다. 저항에 반대하는 새 성비오10세회 총장들의 주요 논거는 저항 사제들 간의 분열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저항 사제들은 다양한 저항 활동(예를 들어, 수사 단체, 신학교, 수도원, 소수도원, 선교회, 기타 등등)을 낳는 다양한 성소 관련 은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 사이에는 추구하는 목적, 가톨릭 신앙의 생존에 관해서는 남다른 일치가 지배하고 있다. 반면에 Newsociety는 의외의 약점이 있는 거인으로, 징계 처분, 제재 및 개인적 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만 뭉쳐있다. 그러나 추구하는 목적에 관해서는 크게 분열되어 있다. 로마와 합의를 맺는다는 둥 아니라는 둥, 공식 권위의 지배를 받는 혼배라는 둥 아니라는 둥, 공의회 주교들과 노닥거린다는 둥 아니라는 둥, Newsociety는 모든 방면에서 금이 가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건대,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예외 없이 가톨릭 진리와 가톨릭 권위 사이의 균열로 말미암아 어떻게 손상을 입는가 하는 것이다. 균열은 2차 바티칸을 교묘하게 실행한 2000명의 주교와 두 교황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배교에서 유래했다. 그리하여 2019년에 한편에서는 진리를 고수하는 저항이 권위의 결여로 겉으로 보이는 분열을 겪는다. 왜냐하면 권위는 정의에 따르건대 위에서만 올 수 있는 까닭에 권위의 필요는 아래에서부터 현실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편에서는 로마의 권위를 부여잡고 있는 Newsociety는 진리의 결여로 내적인 분열을 겪는다. 왜냐하면 로마의 권위는 2차 바티칸의 거짓말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진리는 권위의 목적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시몬아, 너 회두한 후에 너의 형제들을 견고케 하라.”(22,32). 다시 말해서, 먼저 그대 자신의 흔들리는 신앙을 진리 안에서 회복하고, 그런 다음에 둘째로 다른 종도들에 대한 그대의 권위를 행사하라. 이는 타락한 세속에서는 내적인 진리가 진리를 보호할 외부의 권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외부의 권위가 그 내적인 진리를 더 이상 지키지 못하고 있다면 외부의 권위는 진정한 존재 이유를 잃어버리고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 궁극적으로 바오로 6세 및 대주교의 후계자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지위를 섬기는 폭정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 저항자들의 일신상의 고통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그들이 진리에 충실한 한, ‘저항은 새 성비오10세회보다 오래 갈 것이다. 대주교의 성비오10세회가 진리에 충실한 한, 공의회 로마인들을 지배하고, 궁극적으로 더 오래 갈 것인 것처럼. 궁극의 문제는 인물이나 권위의 문제가 아니라, 교리와 진리의 문제이다. 따라서 2000년대 초에 대주교의 후계자가 당시에 성비오10세회 내부의 분열을 해결해 달라고 권위에 호소했을 때, 그는 이미 진리보다 권위, 이성보다 의지를 선호한다는 공의회의 길을 잘 따르고 있던 것이다. 그 결과, 대주교의 성비오10세회는 폭정으로 바뀌었고, 1년 전 선거로 폭군이 권좌에서 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와 있다. 우리의 현대 세계는 그렇다. 실제는 겉모습이 거짓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Kyrie ele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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