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윌리암슨 주교님의 Eleison Comments 제623호
name : silviadate : 2019-06-24 19:38:38hits : 169
 프로메테우스새로운 인간

2019622

623

공의회는 종교를 엉망으로 만들어서,
이제는 인간이 왕관을 쓰고, 천주께서 인간을 섬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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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로 칼데론(Alvaro Calderón) 신부는 그의 책 <프로메테우스, 인간의 종교>에서 2차 바티칸을 근본적으로 교회 임원들이 가톨릭교로 위장한 인본주의라고 소개한다. 이 위장은 인본주의에 미증유의 권위를 부여했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전례가 없는 기술을 필요로 했다. 이제 인본주의는 14세기에 가톨릭 중세 시대의 청빈과 정결과 순명이라는, 초인적이라고들 하는 요구사항에 반항하여, 또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린아이처럼 취급한다고들 하는 교회의 권위에 반항하여, 순전히 인간적인 가치를 지킨답시고 나타났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을 단언하기 위해, 인본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주장하고, 17세기와 18세기에는 자유주의를, 20세기와 21세기에는 초자유주의를 낳게 된다. 2차 바티칸은 참된 천주의 교회를 이 초자유주의의 거짓된 자유에 길들이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렇게 공의회는 주관론으로써 인간의 정신을 해방하고, ‘양심으로써 인간의 의지를 해방하며, 인간의 본성은 성총으로써 들어 올려지는 대신 성총의 섬김을 받음으로써 해방되게 된다.

주관론은 진리를 객체에서 독립시키고 그 대신에 인간의 주관에 예속시키는 오류이다. 궁극적으로 이는 완전한 광기라는 결과를 낳는다. 2차 바티칸은 완전한 광기는 피하고 싶었지만, 생각의 자유를 보장하기에 충분한 주관론을 원했다. 그래서 2차 바티칸은 신덕도리에 관한 신앙 고백문의 불완전성에 의지했다.

, 그 어떤 인간의 말도 신성한 실체를 온전히 알려주거나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말은 얼마쯤은 알려줄 수 있다. 예컨대 천주께서 존재하신다함은 참된 반면, “천주께서 존재하시지 않는다함은 거짓이다. 그러므로 말은 신덕도리를 표현하기에 아예 불완전하지는 않다. 실제로 교회가 가톨릭 신자에게 요구하는 대로 말로 표현된 많은 신덕도리를 믿는다면, 영혼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2차 바티칸(<Dei Verbum>)은 말하기를, 천주는 자신을 말씀으로 드러내지 않으시며, 객관적 말씀이 아니라 주관적 경험으로 알려지신다고 한다. 그리하여 교리는 교리를 뒷받침하는 진실에 관계없이 오락가락할 수 있어서, 2차 바티칸은 진리나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교리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신학은 정당하고, 모든 종류의 종교가 합당하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그저 문화적으로만 우월하다!

그렇다면 2차 바티칸은 의지를 어떻게 자유롭게 할까? 의지는 이미 해방되었다. 만약 더 이상 참 혹은 거짓이란 게 없다면, 도둑질과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은 똑같이 참 혹은 거짓이다. 다시 말하건대, 궁극적으로, 이런 입장은 완전한 광기로 끝난다. 그래서 2차 바티칸은 어떻게 정신의 자유를 단언하면서도 모든 도덕의 붕괴를 피할까? ‘양심으로써 그렇게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그러나 말없이, 천주는 그 어떤 말도 불충분한 방식으로 선을 향하고 악으로부터 멀어지는 도덕적 성향을 통해, 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본질이 변하지 않게 말씀하신다. 그런즉 내 뜻은 나의 밖에서 오는 십계명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으로부터 자유로이 마음이 내킬 것이고, 그렇게 자유로운 상태에서 옳은 것을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그럴까? 원죄는 어쩌고? 사실 도덕은 객관적이다. 도덕은 사리에 맞아서 보편적인 규칙으로써 표현될 수 있고 표현돼야 한다. 주관적 양심만으로는 너무 약해서 원죄에 맞설 수 없다.

결국, 2차 바티칸은 어떻게 천주의 성총을 인간의 본성 위에 두지 않고 아래에 두는가? “성총이 본성을 완성한다,”는 것은 고전적인 가톨릭 원칙이다. 그래서 성총은 죄의 노예가 된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 속성인 자유를 회복함으로써 인간을 완성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성총은 인간의 본성을 해방하고 섬기며, 강생으로써 인간 자신에게 인간을 드러낸다.(<Gaudium et Spes>, #24) 하지만 강생은 첫째로 인간에게 천주를 드러내지 않았던가?

결론적으로, 칼데론 신부는 2차 바티칸이 본질적으로 인본주의이면서, 어떻게 인본주의를 가톨릭 장식으로 꾸미는지 보여준다. 자유, 그렇다, 그러나 천주의 모습을 한 자유이다! 주관론, 그렇다. 그러나 천주의 신비를 포함하는 내적 진리의 주관론이다. 그것은 인간 나름의 신비를 드러낸다! 양심, 그렇다, 그러나 당연히 영원한 법을 엿볼 수 있는 양심이다. 그래서 인류는 당연히 그것을 이행하고, 그래서 천주의 뜻은 인간의 뜻과 일치할 수밖에 없다! 성총, 그렇다, 그러나 우리를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자유롭게 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완성하는 성총이다! 그러니 교회의 풍요로움과 유산으로 만들어진 인본주의는 얼마나 한층 더 아름다운고!

Kyrie ele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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