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윌리암슨 주교님의 Eleison Comments 제610호
name : silviadate : 2019-03-25 07:42:19hits : 81
 왕립 재판소의 결론

2019323

610

진실은 강하고 이길 것이다.”
그리고 거짓에 기대는 국가는 실패할 것이다.

-------------------------------------------------------------------

지난 131, 유럽 인권 재판소는 오랫동안 기다렸던 판결을 언도하여 이 코멘트저자의 항소를 기각했다. 항소는 독일 법에 의한 범죄에 대해, 몇 년에 걸쳐 독일의 7개 법정에서 거의 만장일치 유죄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것이었다. ‘범죄200811월 독일 땅에서 독일 제3 제국(역자: 1933-45) 600만 명이 실제로 독가스로 처리됐는지를 물은 것이었다. 2명의 피고측 독일 변호사는 정치적으로 지극히 부당한 취급을 당하는 의뢰인을 명예롭게 변호하려 했지만, 그들은 불리한 조건에서 싸우고 있었다. 왜냐하면 독일 법이 역사적 진실을 주장하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오늘날 많은 국가처럼 독일에서도, 진실은 더 이상 특정한 사적 이익의 척도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사로운 이익이 진실의 척도가 되었다.

그런데 진실이 어떻게 그렇게 쫓겨날 수 있었을까? 전능하신 천주 자신과 마찬가지로, 진리는 으뜸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천주 자신은 유일하게 으뜸이실 수 있다. 왜냐하면 천주는 당신의 피조물 전체보다 무한히 우월한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진리는 유일하게 으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리를 정신과 실제의 일치라고 정의한다면, 어떤 것이건 진실의 축소 혹은 모순, 진실이 아닌 것이 부정하는 그 진실보다 진실이 아닌 것을 선호하는 것은 어떤 것이건 내 정신이 실제에 대응하는 통제력 상실, 그리고 그와 함께 환상과 거짓 속으로 나의 자아 전체가 더 적거나 혹은 더 많게 빠져듦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국가이건 법률과 법원에서는 진실이 가장 중요함이 분명하다. 정상적인 법정에서 증인이 진실,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고, 진실 말고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지 않는가?

예컨대, 이스라엘인의 모이세, 아테네인의 솔론, 스파르타인의 리쿠르구스와 같은 위대한 법 제정자들이 자기 나라의 건국자로 간주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백성들 사이에 정의의 틀을 세우고, 각자에게 당연한 권리를 지정해 주며, 그리하여 사회 관계 및 사회가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축구 게임에서 22명의 선수가 있는 사회조차 정의의 관리자인 심판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심판은 진실 없이는 심판으로서 행동할 수 없다. 정직한 태클이었을까, 아니면 반칙이었을까? , 공정하려면 그것이 페널티를 받을 만했는지 아닌지는 실제로 일어난 것의 진실에 달려 있다. 따라서 사회에서 생활하는 것은 정의의 척도로만 가능하며, 정의는 진실의 척도로 가능할 뿐이다. 참으로 옳은 것에 보상하고 참으로 옳지 않은 것에 벌을 주는 나라는 진복자로다.

이제 제2차 세계대전에서 600만 희생자라는 악명 높은 살인에 대한 의문이라면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처벌하는 법과 법원으로 눈을 돌려보자.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이었을까, 아니었을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한 손해가 막심하다면 나쁠 수 있다. 그렇지만 살인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진실에 부합한다. 그리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나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좋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 600만 명이 그들의 거짓 종교 역할을 하는 기본 신조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르는 괴물 같은 신화라면, 내가 그들의 마음을 거짓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나는 해방자가 아닌가? “진리가 너희를 속량하여 내리라,”고 우리 주께서 말씀하신다.(8,32) 600만 명이 결코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 살인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사회로부터 처벌이 아니라 크게 보상받을 만하다는 것은 대낮만큼 분명하지 않을까?

이제 정치인들과 그들의 사적 이익은 얼마간은 진실을 비틀 수 있지만, 진실은 보편적인 힘이 있어서 완전히 억눌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객관의 증거에 근거한, 진지한 역사가들의 공통된 판단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사익에 맞서서 일어설 수 있다. 독일 제3 제국 때 ‘600희생자들에 대한 독가스 주입의 경우가 그렇다. 사사로운 이익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주장 할 수 있지만, 75년 전의 객관적 사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이 그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는 이들이 지금 주장하는 것은 독가스 주입 살해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즉 법으로써 그것을 부인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가는 어떤 국가이건 모래 위에 짓고 있다. 모든 국가는 진실을 둘째 자리에 두는 그런 법을 통과시키지 않도록 조심할진저. 왜냐하면 적어도 이 경우에, 감정적 진실에 대립하는 역사적 진실이 반드시 그들 편에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Kyrie eleison.


Home Introduction Log-in Mass Schedule Contact us Site Map Kor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