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윌리암슨 주교님의 Eleison Comments 제604호
name : silviadate : 2019-02-18 11:08:56hits : 54
 날뛰는 감정

201929

604

천주와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인류는 이성을 억누른다.
그래도 이성은 늘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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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TFP(전통, 가정, 재산, 14일판)의 정기 회보 중 또 하나의 흥미로운 기사에서, 존 호르바트(John Horvat)는 현대 사회의 광범위한 현상-통제력을 상실하고 대중의 삶을 지배하는 감정을 관찰하고 비판한다. 다시 한번(2018113일의 이 코멘트’ 590호 참조), 가톨릭의 관점에서 볼 때, 국제 TFP는 다소 심각한 비판(특히 참된 교회를 무시하는 것에 대한)을 지향하는 조직으로서 공개적일 수 있지만, 미국 회보에는 무신론의 세상에서 살아야만 하는 현대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사려 깊으면서도 접하기 쉬운 많은 기사가 있다. 존 호르바트의 <지혜는 어떻게 사람들이 이모티콘의 절대권을 파괴하도록 돕는가>는 이런 기사 중 하나이다.

이모티콘은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작은 디지털 이미지 혹은 아이콘 중 하나이다. 특히 작은 웃는 얼굴이나 찡그린 얼굴은 컴퓨터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고 다양한 감정 중 하나를 나타내기 위해 문장에 쉽게 삽입된다. 호르바트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감정이 나타나는 빈도의 구체적인 예로서 이모티콘을 사용한다. 그는 감정이란 게 그 자체로는 악하지 않지만, 목하 사회 전체에 앙화로운 결과를 동반하면서 일상생활에서 너무 큰 역할을 맡고 있다고 주장한다. 호르바트는 말하기를, 대중이 고난과 고통을 포함하는 세상의 현실을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을 때에는, 감정이 사실을 압도하고, 사유하는 대신 감정을 과장해서 나타낸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테면 날 것의 감정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분노의 정치를 부채질한다. 세상의 문제가 왜 이 모양인지 알기 위해서 생각해야 하는 게 골치 아픈 곳에서는 도리어 감정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들고, 그래서 나는 감정을 과장되게 표현하기를 선호한다. 그러나 감정은 반드시 현실을 불완전하게 파악한다. 많은 착한 아내들은 귀중한 본능과 직감이 있으면서도, 이런 것들이 남편의 보통 더 고차원의 추론(남편의 포학 행위가 아닌)에 종속돼야 한다고 인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감정적인 정치가 어째서 그토록 미쳐 있는지, 2차 바티칸의 새교회와 공의회 사제들이 어째서 그토록 사내답지 못하고 나약한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째서 추론이 감정보다 우월할까? 왜냐하면 추론은 인간의 더 고차원인 부분, 정신과 의지에 속해 있는 반면, 인간의 감정은 더 상급이기도 하고 더 하급이기도 한 부분, 열정과 의지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주님과 성모는 감정을 갖고 계셨다. 우리 주님은 라자로의 무덤에서 우셨다.(11,35) 성모는 12살 아들을 잃으셨을 때 말할 수 없이 심한 고통을 겪으셨다.(2,48) 그렇지만 이성으로 말미암아 성모는 모친으로서 느끼는 슬픔을 신비에 복종시키셨던 것처럼(2,50), 우리 주께서는 21년 후에 제세마니 동산에서 느끼신 인간의 고통을 하늘에 계신 성부의 뜻에 복종시키셨다.(26,39) 왜냐하면 모든 동물에게는 식욕 혹은 열정이라는 감각이 있어서 그들 외부로부터 오는 오감 자극에 반응하는 반면, 이성이 있는 인간만은 정신으로 말미암아 그것에 공급되는 지력에 관한 정보에 반응하는 의지라는 더 고차원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비이성적이거나 짐승류의 동물들에게는 인간의 이런 지적이거나 이성적인 차원이 전혀 없다.

 

, 올바른 정신을 가진 그 누구도 비이성적인 그 어떤 동물에 대해서도 죄를 범한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나쁘게 말해서 비이성적인 동물은 본능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이는 옳고 그름이 인간의 정신으로만 인식되고 인간의 의지에 따라 그렇게 수행되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지가 있어야만 사람은 죄를 의식하는 양심을 지니고,(1,9) 죄를 지을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인간의 의지는 더 고차원의 이성을 따르고 저차원의 감정을 통제해야 하며, 감정을 너무 세게 짓밟지도 완전히 풀어주지도 말아야 하지만, 천부적 이성이 말해주는 것과 함께, 이성에 따라 감정에 견인줄을 매주는 것이 옳고 또 또 그르치지 않는다.

당연히 만약 사람들이 죄를 짓고자 한다면, 양심을 둔하게 하거나 어둡게 함으로써 시작할 것이요, 여하튼 이성을 갖고 있음을 부인하고 동물들이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성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디서든지 그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자유로이 열정을 불태우도록 감정을 풀어놓을 것이다. 호르바트는 이렇게 깊이 들어가지는 않지만, 실제로 이와 같은 현대의 감정 해방은 천주께 대한 현대인의 총력전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인간이 천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자기 좋을 대로 할 수 있도록 천주께서 당신의 우주를 떠나셔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천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Kyrie ele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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