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윌리암슨 주교님의 Eleison Comments 제670호(사다리를 거두어라-III)
name : silviadate : 2020-05-18 14:14:34hits : 59
 사다리를 거두어라 III

2020516

670

공의회 로마인들은 비둘기처럼 구구구 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송골매가 하듯이, 포획물을 갈가리 찢어발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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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2일과 9일의 이 코멘트668호와 제669호는 1990년 르페브르 대주교의 결별 권고의, 겉보기에 껄끄러움을 변호해 보려 했다. 권고란, 대주교가 세운 성비오10세회의 사제들에게 한 것으로, 로마에 있는 교회의 공의회 관리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668호는 대주교가 공의회의 모든 주요 문서의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비난한 주관론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669호는 우리 주님의 참된 교회의 최고위 관리들에게는 존경과 애덕이 주어져야 마땅하다고 인정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주관론은 교회의 신앙에 너무 심각해서 신앙을 척도로 하는 합당한 존경과 애덕이어야지 그 반대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러나 겉보기에 껄끄러움은 변호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코멘트는 약간의 설명을 추가한다.

먼저, 1988년부터 2012년까지 간략하게나마 성비오10세회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좀 떠올려 보겠다. 1988년에 대주교는 장기간에 걸쳐 교회에 봉사하는 걸출한 경력을 쌓은 끝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분명한 뜻에 역행하여 4위의 주교를 성성함으로써 교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교황이 세계적으로 조장하고 있는 신흥 공의회 종교라는 참혹한 피해로부터 신앙과 교회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물론 교황은 대주교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제 발로 진주를 짓밟고 또 돌이켜 우리를 물어 짓이길 것이기 때문에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우리 주님의 말씀과 비교할 때 돼지처럼 행동했다. 과연 2000년까지 요한 바오로 2세는 대주교가 지켰던 교회의 전통을 짓밟고 성비오10세회를 짓이기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세계에는 성실하고 신앙심이 있는 가톨릭 신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주교를 완전히 이해하고 지지했다. 그리고 대주교를 응원하기 위해 결집하여 성비오10세회는 거의 틀림없이 1988년부터 2000년까지 신앙을 지키면서 황금기를 누렸다. 그 결과, 로마와 교황이 성비오10세회를 채 짓밟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역효과를 낳기까지 하여, 대주교와 그의 성비오10세회 덕분에 전통이라는 교회의 참된 진주를 구매할 고객들을 점점 더 많이 끌어모았다. 2000년 봄에 성비오10세회의 대희년 로마 순례 성공으로, 공식 교회가 이들 진주를 진흙 속에 짓뭉개는 데 실패했음이 확연해졌다. 그러자 로마의 돼지는 전략을 채찍에서 당근으로 바꾸어, 비둘기처럼 구구구거리며 살살 구슬리기 시작했다. 성비오10세회를 꾀어 난공불락의 교리라는 요새에서 바뀌기 쉬운 외교라는 모래로 전락시키기 위해.

그리고 1991년 대주교가 서거했고, 그곳에는 더 이상 비교적 젊은 후계자들이 비둘기 모습을 한 것이 구구구거리며 살살 구슬리는 것에 혹하지 못하게 할 대주교의 카리스마와 지혜가 없었다.

그래서 공식 성비오10세회가 적에게 넘어감과 함께, 신앙을 위한 싸움의 전선이 다시 그려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이제는 성비오10세회가 헤비급 공의회 로마보다 라이트급 저항 세력에 더 골을 내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현재의 성비오10세회 지도자들은 아직 상점을 처분하는 서명을 완료하지 않았다. 또 많은 수의 성비오10세회 사제들은 사실은 자기네 상점을 처분하는 서명에 반대한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라도 성비오10세회가 대주교가 주창했던 것을 위해 싸우기를 절대로 멈추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그리고 대주교의 겉보기에 껄끄러움? 파차마마(Pachamama)는 대주교가 2차 바티칸을 계기로 경고음을 울리고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게 얼마나 옳은 일이었는지에 대한 지극히 분명한 일례일 뿐이다. 이후의 돼지와 같은 바로 그 돼지가 공의회(1962-1965)에서도 비둘기처럼 구구구 울어 당시에 거대다수의 가톨릭 양들과 목자들을 속였고, 나중에 혹은 55년 후 현재까지도 그들 모두가 깨어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대주교는 양식(良識)을 키우고자 신학교에서 주어진 건전한 철학의 가치를 매기는 법을 익혔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참된 원칙과 신앙에 비추어 판단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현대 세계와 그 고약한 공의회는 한심한 추문이며, 그리스도교의 겉모습만 남기고 실체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고 있다. 도망치되 뒤돌아보지 말라는 것은 오로지 천주께서 직접 롯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 곧 적용하기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어리석음에 찌들어 있는 세상에 좋은 충고이다.

Kyrie ele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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