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윌리암슨 주교님의 Eleison Comments 제662호(근대주의의 악의-III)
name : silviadate : 2020-03-23 13:42:49hits : 20
 근대주의의 악의 III

2020321

662

태초에 높이 솟은 정신이 있었다.
그것은 천주의 가련한 현실을 저만치 앞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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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사제가 오늘날 철저히 알고 이해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 비오 10세의 위대한 회칙서한 <파셴디(Pascendi)>의 핵심에 있는 중요한 문장이다. <파셴디>1907년에 교회와 인류를 근대주의의 치명적인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작성되었다. 근대주의는 사고의 움직임과 행동이며, 인류는 그것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교회에 맞추어 바꾸는 걸 포기하고, 대신에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교회를 근대 세계에 맞게 바꾸는 일을 한다. 또 이는 <파셴디>의 핵심 문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인데, <파셴디>의 핵심 문장은 무엇인가? 다음과 같으며, 회칙서한 중 제6 단락(또는 그 언저리)에서 발췌되었다.

인간의 이성은 오로지 현상, 즉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들의 분야에 국한됨이요, 그것들이 지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한되나니, 인간의 이성은 이 한계를 넘어 설 권리와 힘을 지니고 있지 못하도다.”

다시 말해서, 근대인은 마침내 선언하기를, 사실상 온종일 감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의 이면을 읽고 있는 인간의 정신은 겉모습의 이면을 읽을 수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문처럼 보이는 것이 벽일 수도 있고, 벽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문 수도 있다. 이로써 당연히 문으로 지나가는 것보다 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지독하게 어리석어서 어리석음을 고안한 근대의 임마누엘 칸트(1732-1804) 추종자들조차도 좀처럼 실제로 벽을 뚫고 지나가려 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해도 놀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자신의 철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살아가는 데 성공한다. 근대 철학이 스스로 그런 악명을 얻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거의 모든 대학교의 철학부에서는 완전히 바보 같은 칸트가 최고로 세력을 떨치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칸트는 위대한 해방자이기 때문이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정신을 현실에서 해방한 자는 그다. 그는 정신이 현실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정신이 외부의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정신은 감각이 보여주는 것의 원인을 찾아낼 수 없으므로, 사실 ‘Ding an sich(() 자체)’인 그 자체로는 현실에 도달할 수 없다. 매일 24시간 내내 내 감각이 내 주위의 무엇이 실제인지를 말해 주고 내 정신이나 지성이 내 감각이 말하는 것을 판독하거나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하기만 하는 것으로 살 수 있더라도 말이다. 칸트 때부터 내 주변의 현실은 점점 덜 흥미로워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칸트가 말하는 초월 철학이다. , 사색인즉, 사색은 문과 벽과 같은 단조로운 일상의 현실과 관계없이 내 공상의 고지를 오르고 깊이를 잴 것이다. 내 정신이 뛰어올랐다! 내 정신은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것이 이다! 사실 진리라는 단어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띤다. 실제로 모든 단어는 초월적인 의미를 띤다. 내 머릿속에서는 자유가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 현실 세계라고 일컫는 것으로 나를 다시 끌어당기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나는 여전히 대학에 속하지 않은 모든 가난한 사람들처럼 단조로운 세상(“!”)에서 계속 살아남으려면(“!”), 벽처럼 보이는 것을 지나가려 하지 않고 돌을 먹으려 들지 않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내 정신은 당신의 모든 기본 상식’(“!”)보다 초월적으로 우월하고, 당신의 모든 기본 상식에서 자유롭지만, 내가 그러겠다고 마음먹으면, 나는 여전히 일상생활을 위해서 그것에 맞춰 움직일 수 있다(“!”).

이제 자유는 사실상 현대인의 종교이며, 너무 많은 가톨릭 신자들의 삶에서 허식이란 허식은 다 있지만 종교의 본질은 없는 것, 겉치레의 종교이다. 성 바오로가 말한 대로, “마지막 날이 임박하면 . . . 사람들은 . . . 신심이 있는 체하나 오히려 그 힘을 갖지 못하리라.”(팀후 3,1-5) , 겉모습은 그대로이나 본질은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가톨릭 신자는 어떤 이들일까? 그들은 엄밀히 말해서 칸트 철학의 가톨릭 신자, 혹은 근대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거의 모두가 칸트 학파이기 때문이요, 오늘날에는 거의 모두가 자유를 숭상하고, 칸트가 결국 그들에게 천주의 현실이라는 감옥에서 나와 초월적 근대성이라는 구름 속으로 도망칠 열쇠를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그러기로 마음먹는 한 다시 언제나 천주께 복종할 수 있지만, 천주는 더 이상 나를 계속 속박하실 수 없다. 나는 자유다, 나는 자유다, 나는 자유롭다!

칸트의 믿을 수 없는 완고함, 교만과 불신행위가 시야에 들어와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주여, 긍련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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