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윌리암슨 주교님의 Eleison Comments 제599호
name : silviadate : 2019-01-08 10:54:52hits : 21
햄릿 = 배교
201915
599
 
소년들이여, 세상이 온통 썩었으나,
천주는 변함없이 그대로 계신다. 의심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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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무대극 총 37편 가운데 햄릿이 제일 헷갈리게 하고, 가장 흥미로우며, 확실히 가장 현대적이라면, 그것은 모두 같은 이유 때문이다. 방 안에 코끼리(역자: 껄끄러워서 말은 안 해도 다들 아는 이유)가 있다. 그 코끼리는 영국이 가톨릭 신앙을 배반한 것을 말한다. 서기 1600년경 셰익스피어가 희곡을 쓸 때, 영국의 가톨릭 신앙은 잉글랜드 정부에게 마구 두들겨 맞은 집이 되고 있었고, 셰익스피어를 절망에 빠지게 했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1) 가톨릭 이후의 독자들, 극장 관객 또는 영국에 닥친 최대 재앙인 종교 혁명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비평가들 대부분에게, <햄릿>은 셰익스피어 희곡 중 가장 헷갈리게 하는작품이다. (2) <햄릿>은 희곡 중 가장 흥미롭다. 왜냐하면 지나간 중세 시대와 다가오는 현대 시대 사이에서 매우 중요하고 갈등하기 때문이다. (3) <햄릿>은 가장 현대적이다. 왜냐하면 지난 400년이 넘는 동안 사실상 전 세계가 영국의 배교를 공유하게 됐기 때문이다.
 
(1) 그러나 오늘날 누가 배교에 신경을 쓸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톨릭 신앙을 저버리는 것) 알기나 할까? 영국에는 1600년처럼, 마귀가 신앙을 맹렬히 박해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교수형, 거열형, 사지절단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희곡에 신앙을 숨겨야 했다. 그렇지만 오늘날 마귀는 누구든지 자기 마음에 드는 종교를 아무거나 선택하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훨씬 더 많은 영혼들로 하여금 종교가 거의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게 만들어서 그들을 파멸시킨다. 야비한 언론은 오류와 부도덕이 하도 넘쳐나서 대다수의 대중은 더 이상 그것들을 알아채지도 못한다. 모든 셰익스피어 희곡 속에 가톨릭이 암호화된 것을 알려면 클레어 아스퀴스(Clare Asquith)의 책 <그림자극(Shadowplay)>을 보라. 그렇지만 햄릿의 근친상간 모친인 거트루드(Gertrude) 여왕이 과연 개신교, 즉 햄릿의 삼촌과 근친상간을 저지르는 영국을 상징할 경우, 우리와 같은 동시대인이 햄릿 왕자의 우울증에 맞는 그 어떤 이유도 알 수 없다면 이상한 일일까?
 
(2) 희곡은 매우 중요하고 갈등한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의 다른 희곡과 달리, <햄릿>은 중세 세계와 신세계질서 사이에서 떠돌기 때문이다. 이는 희곡에서 왕자의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 특히 진정한 사랑 오필리아(Ophelia)를 향한 왕자의 괴로움으로부터 읽힐 수 있듯이,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사랑하는 나라에서 신앙 박멸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뼛속까지 동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가톨릭 신자가 괴로운 게 아니라, <햄릿>을 쓸 때 셰익스피어가 괴로웠다. 그것은 계속되지 않았다. 모든 희곡의 저변에 흐르는 그 도덕 양식을 알고 싶다면, 존 비바얀(John Vyvyan)의 매우 귀중한 책 <셰익스피어의 윤리학(The Shakespearean Ethic)>을 읽어 보라. 그 도덕 양식은 셰익스피어가 중세 영국으로부터 물려받은 빛나는 유산이었다. 그것은, 특히 왕자가 마음속에 복수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자 오필리아를 퇴짜놓을 때, <햄릿>에도 있다. 그러나 다른 희곡에서와 달리 <햄릿>에서는 다름 아닌 배교로 말미암은 사회의 부패가 극심해서 반사회적인 왕자가 절대적인 영웅으로 다가온다. 사회적 권위에 대한 모든 자연적 존경심을 무시해야 하는 반권위주의 영웅의 긴 행렬(할리우드 참조)에서 최초의 영웅인 것이다. 배교는 사회를 말살한다.
 
(3) 그리고 <햄릿>은 셰익스피어 희곡 중에서 가장 현대적이다. 왜냐하면 중세 모델에서 가장 많이 벗어나거나, 중세 모델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햄릿> 이후에 많은 희곡을 썼다. 그러나 그는 결코 사랑을 복수로 바꿔 치거나 신약으로부터 구약으로 돌아가도록 다시 유혹당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훌륭한 희곡을 집필하면서 평정심과 균형을 되찾았지만, 1611년에 무대와 런던을 버렸고 청교도들이 잉글랜드를 장악하고 결국 온 세상을 천주로부터 멀어지게 인도하도록 내버려 뒀다. 오늘날까지 반()영웅들의 젖을 먹고 자란 젊은 남자 세대는 그들 안에 중세의 유산이라곤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반()남성으로 변질됐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변치 않았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남자가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여자들이 자신을 남자로 만들려 애쓰고 있는 이유요, 젊은 두 성별이 서로를 점점 더 경멸하는 이유이다. <맥베스>의 한 행에 이렇게 돼 있다. “혼란은 이제 그의 걸작이 되었도다.”
 
<햄릿>을 읽는다면, 1막의 유령을 조심하라. 그대가 가톨릭 신자라면 전능하신 천주는 결코 영혼이 연옥에서 나와 복수를 꾀하게 내버려 두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유령은 지옥 말고, 어디서 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왕자는 정말로 그런 영웅일까? 셰익스피어의 괴로움은 이해할 만했지만, 그것은 그의 신학을 왜곡했다. 총각들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흠숭하고 사랑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을 사랑하라. 성모께 묵주기도를 바치고 처녀들을 인도하라. 처녀들에게 그대들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다.
 
Kyrie ele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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